"그녀는 반드시 순종되어야 한다(She must be obeyed)." 헨리 라이더 해거드의 걸작 '그녀(She)'의 중심에 있는 문구입니다. 1887년 발표된 이 작품은 빅토리아 시대의 제국주의적 상상력과 동양에 대한 서구의 시선, 그리고 세기말의 불안과 매혹을 담아낸 독특한 모험 로맨스입니다. 20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신비로운 여인 아이샤와 그녀를 찾아 나선 영국인들의 이야기는, 당대 독자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깊은 문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미지의 세계와 제국주의적 탐험
작품은 아프리카 오지를 배경으로 합니다. 캠브리지 출신의 학자 홀리와 그의 양자 레오가 고대 문서의 비밀을 따라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여정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의 제국주의적 탐험 열망을 반영합니다. 미개척지에 대한 호기심, 서구인의 우월의식, 그리고 '문명화'의 사명감이 이야기 전반에 녹아있습니다. 작가는 당시 영국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식민지 개척의 열망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아메하게(Amahagger) 부족의 묘사는 당시 서구인들의 '타자화된' 아프리카관을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신비롭고 야만적이면서도 고대 문명의 흔적을 간직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이는 19세기 서구 사회가 가진 이중적 시선을 반영합니다. 미개한 것으로 여겨지는 동시에 고대의 지혜를 품고 있는 존재, 정복의 대상이면서도 경외의 대상이 되는 모순적 존재로 묘사됩니다.
불멸의 여인 아이샤와 여성성의 표상
작품의 중심인물인 아이샤는 매우 복잡한 캐릭터입니다. 그녀는 2000년 이상을 살아온 불멸의 존재로,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지식, 그리고 권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녀-누구도-반드시-순종해야만-하는(She-who-must-be-obeyed)'이라는 그녀의 칭호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위협과 매혹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아이샤는 빅토리아 시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대변합니다. 그녀는 지적이고 강력하며 독립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감정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아이샤의 불멸성은 당시 과학 발전과 진보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열망을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한계와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결국 그녀가 '불의 기둥'에서 맞이하는 비극적 최후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의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과학 만능주의와 제국주의적 팽창에 대한 은유적 경고로 읽힐 수 있습니다.
영원한 사랑과 환생의 신화
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또 다른 요소는 영원한 사랑의 테마입니다. 아이샤가 2000년 동안 기다려온 칼리크라테스의 환생인 레오와의 사랑 이야기는, 로맨스 장르의 전형적 요소들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섭니다. 이 사랑은 시간과 죽음을 초월하는 영원한 것으로 그려지지만, 동시에 파괴적이고 위험한 것으로도 묘사됩니다. 아이샤의 사랑은 집착에 가까우며, 그것이 가진 강렬함은 오히려 파멸의 원인이 됩니다. 이러한 사랑의 묘사는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억압된 성의식과 그에 대한 반발을 동시에 반영합니다. 정숙하고 도덕적이어야 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표면적 가치관과, 그 이면에 존재했던 강렬한 욕망의 대립이 아이샤라는 캐릭터를 통해 표현됩니다. 그녀의 사랑은 당시 사회의 규범을 초월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로 인한 파멸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요약
'그녀(She)'는 단순한 모험 소설이나 로맨스를 넘어서는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제국주의적 상상력, 여성성에 대한 양가적 시선, 과학 발전에 대한 열망과 불안, 그리고 영원한 사랑이라는 보편적 테마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특히 불멸의 여인 아이샤는 당대 서구 사회의 욕망과 공포를 동시에 체현하는 매혹적인 캐릭터로,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이 작품이 1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독자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아온 것은, 이처럼 다층적인 의미와 해석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